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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육주 여사님을 추모하며
작성일
2014-09-25 18:08:24
작성자
목사 여규식
조회
411

 

 

고 이육주 권사님을 추모하며

 

 

이 권사님의 출생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의 모습과 흡사했습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피를 받고 태어나시면서도 석가모니 같이 장엄한 궁중에서 나시지 않으시고, 구린내가 코를 찌르는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권사님도 다윗 가문 못지않은 혈통을 갖고서도 남자가 아닌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멸시, 천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남아라는 이유로 나면서부터 애굽으로 쫓겨 갔듯이 말입니다. 공자님, 석가모니는 어려서부터 많이 배웠으나 예수님은 12살 때 그 부모를 따라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갔다는 성서의 기록밖에는 없습니다.

권사님도 정규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다만 외조모와 어머니로 이어져 내려온 기독교 신앙의 깊은 뿌리에서 그 진액을 받아먹고 성장했습니다. 이것 역시 예수님의 성장과정과 비슷했습니다.

예수님은 똑똑한 제자들과 더불어 그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기시면서 세상이 버리고 당시 종교마저 외면한 버림받은 자들을 위해 사랑이 담긴 생명으로 쏟아 부으셨습니다.

권사님은 언어장애자이신 남편, 오직 성실ㅇ 정직 근면의 화신과 같은 남편과 더불어 전 대구시민들을 섬기는 종의 삶을 사셨습니다.

근검 절약으로 모아진 오병이어로 내일의 이 나라 큰 일꾼을 기르기로 마음먹고 교육계에 손을 댈 때 대구 시민들의 비웃음은 대단했습니다.

당시 목회자인 본인도 그 틈에 끼어 있었습니다. 내외분의 성실 근면은 꽃을 피웠습니다. 권사님 내외분의 손만 닿으면 연탄불 온돌방 아랫목이 따뜻해지고 문을 닫게 된 학교는 어린 학생들의 꿈을 마음껏 키울 수 있는 에덴동산 같은 학교가 되었습니다.

권사님은 복지사업에도 눈을 돌렸습니다. 사람들이 대구를 한국의 예루살렘이라고 합니다. 교회가 많다는 말입니다.(오늘 예루살렘에는 교회가 거의 없다)

그런데 그 많은 교회가 합심해도 할 수 없는 늙고 병든 사람들을 돌보는 그 고귀한 일을 혼자서 감당했습니다.

어떻게 그리고 예수님이 가신 좁고 협착한 길을 그대로 따라가실 수 있었는지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 보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을 때 제자들과 군중들은 예수님을 임금으로 모시려고 했습니다.

바로 이 때 예수님은 단호히 “NO"하시고 홀로 산으로 향하셨습니다. 오늘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서 있는 그 곳에서 성공을 하고 명성을 얻으면 국회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감투욕’ 이 땅에 살고 있는 인류가 품고 있는 욕망 중에 최고 최후의 욕망입니다. 세상 사람들 뿐아니라 소위 성직자라고 불림을 받는 목사들도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것입니다.

한국에서 예수 제일 잘 믿는다는 교단이 290개로 쪼개어진 것은 이것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권사님은 담대히 그곳에서 오라고 하는데도 예수님처럼 단호히 ‘NO'하셨습니다. 신앙은 자기 유한성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계에서 첫째, 둘째로 큰 교회 교역자는 ”하면 된다“를 외쳐서 교회를 성장시켰습니다. 그런데 권사님은 분수를 지킬 줄 아시는 분이었습니다. 이 말은 참 신앙인이었다는 말입니다.

하루는 저에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목사님, 나는 기도 안해요’ 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왜냐고 했더니 ‘받은 것이 너무 많아서 더 달라고 할 것이 없어요’ 하시는 겁니다.

이것은 다윗이 시편 23편에서 노래한 “내 잔이 넘치나이다”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은 기도가 감사 찬송으로 변한 것입니다.

신앙인들의 간구(기도)는 감사 찬송으로 반드시 변해야 하는데 권사님은 신학자도 아니요, 성서를 깊이 연구하신 적도 없는데도 오직 그의 삶속에서 얻은 진리요 살아있는 신학이요 신앙입니다.

그래서 저는 구 후에 권사님에게 「감사 권사님」이란 별명을 붙여드렸습니다.

저는 교회 신문에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저는 50여년 동안 성서를 공부하고 신학서적을 뒤적이면서 살았습니다.

그래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학자들의 주저는 한 권씩이라도 읽으면서 성서 진리의 높은 산에 올라가보니 이미 그 산꼭대기에는 우리교회 이육주 권사님이 먼저 앉아계시는 겁니다.”

교회를 신축할 때의 일화입니다. 교회에 빚이 좀 있었는데 하시는 말씀인즉 “지금 나는 복지관을 짓고 있지만 교회에 빚을 남겨두고 복지관을 지을 수 없습니다.

내가 ○○○만원 헌금할 터이니 장로님들도 하십시오. 예배를 마치고 본당에서 이렇게 말씀을 하신 다음 집에 돌아가시자마자 저에게 전화를 거시는 겁니다.

”목사님, 제가 그만해도 되겠습니까? “ 더 내시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저의 대답은 ”그만하면 충분합니다. 헌금은 혼자서 다하면 안됩니다. 다른 분들과 같이 해야 합니다.

“그 후에 소문을 들으니 친구 분들에게 권사님이 저를 자랑하는 뜻으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이번에 우리 교회에 오신 여 목사님은 나이롱 목사야.

교회 지으면서 헌금강조도 안하고 아니 헌금하겠다는 것도 못하게 하니 나이롱 목사가 아니고 무엇이냐“ 하면서 좋아서 웃으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경산대학교 강단에서 권사님이 박사학위를 받으실 때 다음과 같이 축사를 했습니다.

“이 땅에는 두 종류의 박사가 있는데 그 하나는 도서관에서 나오는 논문박사요, 또 다른 박사는 인간의 삶속에서 꽃피는 생명박사입니다.

그런데 이육주 권사님은 글자 한자 쓰지 않고 이 학위를 받았는데 인류역사상 이 생명박사를 받은 분은 예수님, 헬렌켈러, 이육주 이렇게 세분 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중국 땅 용정에서 있었던 이야기 한 토막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선구자’란 노래에 나오는 일송정이 있는 비암산 모퉁이에 이 권사님 성금으로 세워진 거대한 복지관 개관식에 우리 일행이 초대받았습니다.

개관식을 마치고 저녁에 VIP실에서 쉬고 있는데 용정시 공산당 서기장이 부하 두 명과 함께 찾아왔습니다.

공산국가에서 공산당 서기는 어마어마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분이 우리권사님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가 된 것입니다.

“총재님(권사님을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복지관을 지어만 주시면 운영은 어떻게 합니까?” 하니,

총재님은 마치 상전이 종을 다루듯 “그러면 어쩌란 말이요” 하시니, 서기장이 “여기 과수원이 나온 것이 있는데 그것을 사주시면 노인들이 잘 관리하면 건강에도 좋고 거기서 나오는 수입으로 이 복지관을 운영 할 수 있습니다”

“그거 얼마면 살 수 있소?” 하시니 “한화로 이백만원이면 됩니다” 라고 하니 우리 총재님이 “사시오”하시는 것입니다.

그 때 그 공산당 서기장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저는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조선의 임금 인조가 청 태종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항복했던 그 치욕을 권사님이 완전히 복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모택동과 등소평이 우리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앞에 고개를 숙이며 ‘당신들이 우리를 이겼습니다.’하는 것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우리 권사님 혼자 정치, 종교 지도자들이 하지 못한 위대한 일을 다 하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권사님은 평소에 자손들에게 “내가 죽은 다음에는 제사를 지내다고” 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 역시 큰 신앙인만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오늘 한국교회 교역자와 교인들은 ‘제사’하면 고개를 흔들지만 이것은 아주 잘못된 태도입니다.

서양선교사들이 처음 한국에 들어올 때는 동양인들은 문화가 없는 야만인 비슷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유교 불교를 우상 종교라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지금 가톨릭에서는 제사를 지내고 있고 서양에서는 동양종교를 아주 높게 평가하며 배우고 있습니다. 오늘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는 제사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제상을 차린 것을 우상숭배라 하지 말고 성찬식과 같은 것으로 이해하면 훨씬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제상에 차려놓은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며 예수님을 영접하듯이 제사를 지내면서 새끼 예수로 살다 가신 고인의 뜻을 되새기고 받아드려서 이 가정과 복지관 학교에서 행복의 꽃을 피워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최후만찬을 마치시고 찬미하며 감람산으로 나아가셨습니다.

이 가정도 제사상에서 할머니 이육주 권사님의 뜻을 받아 꼭꼭 씹어 먹고 희생과 봉사 즉 사랑의 클라이맥스인 십자가로 찬미하며 나아갈 때 가정, 학교, 복지관, 요양원 위에 부활의 광명의 꽃이 활짝 피게 될 것입니다.

존경하는 권사님, 사랑하는 신랑 예수님과 더불어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의 품안에서 영생복락을 누리십시오.

 

2014년 8월

 

권사님도 좋아하셨던 담임목사 여 규 식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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